[이재명의 웹자서전] ep.9 내 몸, 백 개의 흉터

[이재명의 웹자서전] ep.9

내 몸, 백 개의 흉터


빙과류 판매용 냉장고를 만드는 아주냉동으로 공장을 옮겨 철판을 접고 자르는 일을 맡았다. 

거대한 샤링기에 철판을 올리고 페달을 밟으면 순식간에 

단두대 같은 날이 떨어지며 두꺼운 철판도 가위 속 종이처럼 가볍게 잘렸다.


동마고무에서 매일 아들의 손바닥에서 핏자국을 봐야 했던 

엄마의 조바심 때문에 공장을 옮긴 것이었는데, 오히려 더 위험한 곳으로 간 셈이었다.


아주냉동에서는 출근하면 군복 입은 관리자가 군기 잡는다고 줄을 세워놓고 소위 ‘줄빳따’를 때렸다. 

줄줄이 엎드려뻗쳐를 한 채로 엉덩이를 맞았다. 

불량이 많이 난 날에도 빳따를 맞았다. 

퇴근할 때는 군기를 유지한다며 공장문을 나서기 전 또 때렸다. 

인권 같은 건 책에나 있는 얘기였다.


“어!”


어느 날 옆에서 절단 작업을 하던 고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꿈틀거렸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사고를 당한 고참이 어어, 하더니 희죽 웃으며 그것을 얼른 집어 들었다. 

그는 이미 두 번의 손가락 사고를 당했던 사람이었다.


고참은 봉지에 손가락을 담고 작업장을 뛰쳐나가면서 그때서야 비명을 질렀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희죽, 웃던 고참의 얼굴이 눈앞에서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샤링기는 날이 예리해서 사고가 나도 첨엔 잘 몰라. 

그냥 차갑고 서늘하지. 손을 들어보고야 아는 거야.”


누군가 내 귀에 소곤거렸다. 그날 밤 나는 긴 악몽을 꾸었다.


공장문은 출근과 동시에 굳게 닫혔다. 

퇴근 때까지 점심시간이라도 공장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공장문을 확 밀고 나가 앞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실컷 따먹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소망이었다.


그곳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나와 같은 처지의 소년공들뿐이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시골에서 올라와 산업역군이란 거창한 이름의 공돌이가 된 아이들.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에게 도시락 하나를 더 싸달라고 했다. 

자취를 하며 점심을 굶는 아이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느 날부터 다른 소년공들도 각자 도시락을 꺼내 나눠 먹기 시작했다. 

별것 없는 뻔한 반찬에 딱딱하게 식은 밥.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나눠 먹는 그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함께 나누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 공장에서도 함석판을 자르느라 수없이 찔리고 베였다. 

그 후에도 끊임없이 눌리고, 떨어지고, 꺾이고, 소음과 유독약품에 노출되었다. 

덕분에 내 몸에는 그 시절의 흔적이 남았다. 아마 백 개도 더 될 것이다.


내 몸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지문처럼 남아 나의 처음이자 끝, 전부를 이룬다.

소년공이었던 아이들, 그 가난했던 아이들의 말간 슬픔이 여전히 내 안에서 찰랑거린다.


#이재명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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