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ep.3 뺨 스물일곱 대

[이재명의 웹자서전] ep.3 뺨 스물일곱 대


아버지가 성남으로 떠난 뒤, 어머니 혼자 우리 남매들을 키웠다.


어머니는 화전을 일구거나 남의 밭일을 해주고 좁쌀, 보리쌀을 받아왔다. 

그 보리쌀도 자주 부족해 겨를 얻어다 겨떡을 쪄먹었다. 

겨는 보리의 껍질이다. 보리개떡이라 불렀던 겨떡은 아무리 잘 씹어도 삼킬 때 날카로운 보리껍질이 목을 찌른다. 

개떡 같다는 말의 ‘개’를 멍멍이가 아니라 '겨'라고 내가 생각하게 된 이유다.


먹기 힘든 음식이었지만 나는 맛있는 표정으로 열심히 씹어 삼켰다. 

엄마 표정을 슬쩍슬쩍 살피면서... 목구멍 따갑다고 

투정부리는 남동생 여동생에게는 흘겨보는 것으로 눈치를 줬다.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간 적이 없다. 

무슨 강조기간도 많아 그때마다 리본을 사서 달아야 했는데 그것도 못 챙겼다. 

또 봄가을이면 논밭에서 벼나 보리 이삭을 한 되씩 주워오라 했다. 

아무리 열심히 주워도 쭉정이 한 홉 채우기조차 버거웠다. 

아이들은 집에서 한 됫박씩 퍼오곤 했는데, 나는 몸으로 때웠다.


학교의 요구나 지시를 상습적으로 어긴 나는 매를 맞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화장실 청소로 대속했다.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


아이들이 산과 들로 특활을 나가면 크레파스도, 도화지도 없는 나는 홀로 교실에 남아 있곤 했다. 

적막한 교실엔 햇살만 푸졌고, 그 사이로 쓸쓸함, 외로움, 약간의 슬픔 같은 감정이 먼지처럼 부유했다.


인싸에 낄 수 없는 아싸, 주류가 아닌 비주류. 내 비주류의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한 번은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는 환경미화작업을 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땔감을 해오고 밭일을 하느라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딱 걸렸다. 선생님에게 내 사정은 통하지 않았다.


손바닥이 내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선생님의 손이 퍽퍽 얼굴에 감기는데 정신이 아득했다. 

미화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맞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맞으면서도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이 맞았을 것이다.


그날 내가 맞은 따귀는 스물일곱 대였다. 친구가 세어줘서 알았다. 

먼 친척인 친구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했다. 나보다 더...


내 초등학교 성적표 행동란에 이런 게 적혀 있다. 

칭찬하는 말 뒤에 달라붙은 한 마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


덤비는 성질이 있음.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무엇에 덤빈다는 뜻이었을까? 무턱대고 도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가난 때문에 더 빨리 자랐고 더 빨리 세상을 알게 됐다.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가난하다고 겪어야 했던 부당함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예민하게 반응했던 듯하다. 

부당함에 대한 민감도가 남달랐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도...


덤벼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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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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